■ 책소개

“두부다.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흩어진 두부 파편.
아무리 봐도 시체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작가 구라치 준,
그의 내공과 장기가 한껏 발휘된 여섯 편의 웰메이드 미스터리

엉뚱하고도 강렬한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 구라치 준의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지적 자극과 통렬한 블랙유머와 아이러니, 치밀한 논리에 더하여, 무엇보다도 제목처럼 기상천외한 발상이 돋보이는 개성적인 미스터리 작품집이다.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구라치 준은 국내에서는 『지나가는 녹색 바람』과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의 단 두 권이 번역, 출간되었지만 각종 미스터리 상에 꾸준히 이름이 언급되어 온 일본 미스터리계의 대표 중견 작가이다.

이 책은 본격 미스터리와 일상 미스터리, 바카미스(황당무계하고 말도 안 되는 트릭을 사용하는 미스터리)적 트릭, 패러디, SF적 상상력, 대표적 캐릭터인 ‘네코지마 선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구라치 준의 장기와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된 ‘최고의 한 권’이라고 할 수 있다. ‘미스터리계의 교과서’, ‘유머 미스터리의 거장’ 등으로 불리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구라치 준이 완전히 이겼다”, “이 작가 글은 너무 웃겨서 읽는 맛이 있다”, “훌륭한 반전을 가진 소설” 등 일본 미스터리 팬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작가는 “미스터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위화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는데, 이번 작품집 역시 미스터리 매니아는 물론 초심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묻지마살인’의 사회적 문제와 고도로 발달된 정보 시스템이라는 현대 기술의 맹점, 사이코패스의 광기, 전쟁이 주는 황폐함, 일상에 침투하는 죽음의 영묘한 기운 등 작가적 기량과 주제적 깊이를 겸비한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고 나면, 사각지대에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 목차

ABC 살인 / 7
사내 편애 / 37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 77
밤을 보는 고양이 / 117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 153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 217

옮긴이의 말 / 323

■ 출판사서평

“천장을 똑바로 보고 쓰러진 피해자.
그 입에 꽂힌 길고 하얀 대파.
그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광경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의 소름 끼치는 변주곡 「ABC 살인」은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속도감 있는 단문이 상당한 몰입도를 선사하며 ‘묻지마 살인’의 공포감을 고조시킨다. A지역에서 A로 시작되는 이름의 인물이 살해되고, 이어서 B지역에서 B로 시작되는 이름의 인물이 살해된다. 이에 주인공은 완벽한 살해 계획을 세우는데 이윽고 예상 외의 사건이 닥치면서 경악을 금치 못할 파국이 펼쳐진다. SF와 블랙코미디를 조합한 「사내 편애」는 인공지능 기업인사 관리 시스템 ‘마더컴’이 등장한다. ‘마더컴’은 지나치게 합리적이지도 않고, 적절히 모호하며, 조금은 얼빠진 듯한 ‘변덕’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변덕의 극단에서 바로 ‘기계의 편애’라는 웃지 못할 비극이 벌어진다. 시신과 파, 케이크의 조합이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기괴하게 각인되는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파티쉐 전문학교 학생이 살해된 사건 현장, 피해자의 머리맡에는 세 종류의 케이크가 놓여 있고 입에는 길고 하얀 대파가 꽂혀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하는 묘미와 함께, 마지막에 남은 ‘그것’의 으스스함도 맛볼 수 있는 한 편이다. 「밤을 보는 고양이」에서는 회사원 유리에가 시골 할머니 집에서 고양이 미코와 함께 휴가를 보내게 되는데, 동네가 발칵 뒤집어질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 현실의 각박함을 무리 없이 담백하게 담아낸 일상 미스터리이면서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지 않을 수 없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을 수도 있다?
부질없는 상상, 쓸데없는 망상이 절묘한 힌트다!

표제작 「두부 모서리에 머리 부딪혀 죽은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말, 군 특수과학연구소를 무대로 한 밀실 상황에서 괴사(怪死) 사건, 즉 두부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그려진다. 연구소의 실험 장치인 공간전위장치도 이상야릇하지만, 미치광이 박사와 어리숙한 학도병 등 탐정 역의 할당 및 추리의 진행 방식도 파격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소설적 장치는 전쟁의 광기와 어우러지면서 이 특수한 논리가 지배하는 특별한 무대 속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제목만 보면 바카미스적 트릭이 연상되지만, 전시 중이라는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터무니없어 보이는 밀실 트릭을 현실에 단단히 착지시키고 있다.
마지막 작품인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은 구라치 준의 첫 번째 단독 저서인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탐정 ‘네코지마 선배’ 시리즈다. 진기한 체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신출귀몰하는 괴짜, 고양이처럼 영묘하고도 천진한 눈을 한 네코마루 선배다. 그가 신소재 개발 기업의 연구소를 무대로 한 불가능한 밀실 상황에서, 살인 미수 사건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직구’에 가까운 정통 본격 미스터리로, 복선과 추리, 해결에 이르는 과정이 세련되고 명쾌하여 깔끔한 뒷맛을 남긴다.


패러디, 바카미스, SF,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까지,
코믹한 필치, 허를 찌르는 논리, 심상치 않은 여운으로
미스터리 팬들을 매료시키는 구라치 준 월드 스타트

1993년에 도쿄 창원사에서 실시한 공모전에서 와카타케 나나미 상을 수상하며 처음 이름을 알린 구라치 준은 1994년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했다. 그 후 네코마루 선배가 탐정으로 활약하며 수수께끼를 풀이하는 장편과 단편을 꾸준히 발표하다가 2001년 『항아리 속의 천국』으로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2017년 발표한 『황제와 권총과』로 도서(倒?) 미스터리를 시도하는 한편, 2019년 출판업계의 내막을 밝힌 『작가들』 등 작품의 폭을 종횡무진으로 넓혀오고 있다.
구라치 준의 소설들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풍이지만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느슨함 뒤에 숨어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트릭이 바로 그의 장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대개의 미스터리 소설들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착각하는 존재인지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부질없는 상상, 쓸데없는 망상일지언정 일반 상식에서 볼 때 그저 ‘착각’이라 치부하는 단서들도 구라치 준의 미스터리에서는 절묘한 힌트이자 복선이 된다.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기 위한 두뇌의 가동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을 수도 있다’는 가설에서 시작되듯이. 일면 부조리해 보이는 트릭과 복선이 추리 과정을 통해 정합적인 결론에 도달했을 때의 쾌감은 더욱 배가된다.
데뷔한 지 25년이 넘었지만 그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좀처럼 일을 안 하기로 유명한 작